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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센터 안내
살기좋은 우리동네 영등포구 신길6동의 유래를 알아 보세요. 영등포구내의 동별로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샛강을 경계로 여의도와 마주보고 있는 신길동은 조선시대에 서울로 들어오는 영등포나루터가 있었던 곳으로 알려진 교통의 요지였고, 평평한 들판에 농업을 주로하던 생활터전이었다.

 

신길6동 지역은 원래 번대방리(番大方理)이었다가 대방동, 신대방으로 바뀌었고 오늘날 신길동에 편입되었다.

 

대방동(大方洞) 동명의 유래는 조선시대에 높은 절(靑蓮庵) 아래에 있는 마을과 번댕이(樊塘理)라는 두 마을로 이루어진 곳이었는데 번대방리라 일컫다가 대방동으로 바뀌었고, 신대방동(新大方洞)은 대방동 접경의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신길동은 조선시대부터 포구로서 신기리라고 불리어진 마을로 새로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붙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은 조선초 태종16년(1416) 금주(衿州)를 금천현(衿川縣)이라 하였고 정조19년(1795) 금천현을 시흥현(始興縣)으로고쳤다. 고종32년(1895) 인천부 시흥군 하북면 번대방리로 바뀌었다가 1896. 8. 4 경기도 시흥군 하북면 번대방리(京畿道 始興郡 下北面 番大方理)로 되었다.

 

1914. 4. 1 경기도 시흥군 북면 번대방리로 개칭된 바 있으며, 1936. 4. 1 번대방리 중 상도천 우안(上道川 右岸)지역이 경성부에 편입되면서 경성부 영등포출장소 번대방정(番大方町)이라 하였다. [상도천 좌안(左岸)지역은 경성부 편입에서 제외되어 시흥군 동면 번대방리로 남아 있었다가 1949. 8. 13 서울시에 편입되었고, 1959. 3. 15 신대방동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1943. 6. 10 구제도(區制度)가 실시되면서 영등포구 관할이 되었고, 1946.10.1 일본식 동명을 우리 동명으로 개칭할 때 대방동으로 바뀌었다.

 

1973. 7. 1 관악구가 신설됨에 따라 대방동과 신대방동은 관악구 관할로 되었다가 1975. 10. 1 대방동(대방천 북쪽지역),신대방동(대방천 남쪽지역)의 각 일부가 영등포구의 신길동에 편입되면서 신길6동으로 하였다, 그러나, 인구 증가로 인해 1977. 9. 1 신길7동을 분동시켜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신길동의 부락별 옛 별명
     (본)신길동 : 분동후의 고유 신길동으로 지금의 신길1동 지역임
    신 광 동 : 신길동 95번지에서 우신초등학교를 잇는 길
                 이북의 지역을 관할하는 동으로 지금의 신길2동 지역임
    신 남 동 : (본)신길동, 신광동, 신풍동을 제외한 지역으로 지금의 신길4동 지역임
                   지금의 신길6동은 동작구의 대방1,2동과 신대방 일부가 편입된 지역임
                   신길6동에서 신길7동이 분동되었음
    신 풍 동 : 사러가쇼핑 옆 신풍시장이 위치했던 동네로서 신길로 서쪽지역을 관할하는
                 동으로 지금의 신길3동 및 신길5동 지역임
 

▶ 우리동명소
신길벚꽃거리(신길동4573 ~4759번지)
신길동 4573~4759번지간에 91년 조성된 신길 벚꽃 거리는 문화, 놀이터가 없는 지역임을 감안하여 지역 주민의 정성과 뜻을 모아 사업비 4,000만원을 조성하여 총연장 400미터, 폭 8미터에 벚꽃나무 150주를 식재하여 조성된 거리로 마을의 상징이되며 주민의 애향심 고취는 물론 화합, 협동하는 마음을 후손에게 보여지도록 그 뜻을 길이 보존하고자 추진한 사업임
매년 4월경에는 이 산책로에서 헌수자 및 주민이 모여 비료주기와 지역 주민행사 개최 등으로 주민 화합 및 애향심을 키우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음